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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안중근 의사의 권총] 이토 히로부미 저격 시 사용한 권총 FN Browning M1900

by OEO_oeo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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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 시 사용한 권총 FN Browning M1900

 

출처: Royal Armouries (https://collections.royalarmouries.org/first-world-war/type/rac-narrative-73.html)

 

Action / Operating systemRecoil
Barrel length10.2 cm (4.01 in)
Calibre / Bore7.62x17mmSR (.32 ACP)
Capacity (rounds)7
Country of manufactureBelgium
Date entered service1900
Effective range20 m (21 yd)
FeedBox magazine
ManufacturerFabrique Nationale (FN)
Muzzle velocity282 m/s (925 ft/s)
Overall length17.2 cm (6.8 in)
Primary operatorBelgium
Weight625 g ( 1 lb 4 oz)

 

분류: 자동권총

사용탄: 7.65×17mmSR Browning

급탄: 7발들이 탄창

중량: 625g

전장: 172mm

총열길이: 102mm

작동방식: 쇼트리코일

 

19세기 말에 등장한 자동권총의 대부분이 총열과 프레임 사이에 간격이 벌어져있어 명중률은 리볼버보다 떨어졌고 후퇴 기관은 내장되어 있고 복잡해 조잡한 작동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존 브라우닝(John Browning)은 슬라이드 방식을 도입한 자동권총을 설계했고, 1897년 이 자동권총의 설계도를 FN헤르스탈에 넘기며 FN헤르스탈 나름대로의 생산 및 개량이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산탄총 생산과 관련해서 미국 유수의 총기 제작사인 레밍턴(Remington Arms)과 브라우닝의 계약이 어긋나면서 새로 관계를 맺게 된 벨기에의 FN(Fabrique Nationale de Herstal)이 1898년부터 FN M1899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자동권총을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총열이 길어 휴대가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오자 브라우닝은 즉각 재설계에 나섰고 그렇게 이듬해부터 시판이 이루어진 개량형이 바로 FN M1900입니다. FN M1900은 사격 시 슬라이드만 움직이므로 그만큼 총신의 길이가 단축되어 권총 전체의 크기도 작아졌고 덕분에 휴대가 용이했습니다. 그리고 총구가 보통 위에 위치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래에 위치한 점도 특이했죠.

 

 

 

FN M1900은 발매와 동시에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1899년에 생산된 초기 모델부터 포함해 단종 된 1911년까지 72만 4450정이 생산되어 유럽 각국의 군경은 물론, 개인들에게 공급되었고 바다를 다시 건너와 브라우닝의 고국인 미국에도 팔렸습니다. 이를 필두로 그 후속작들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럽에서 브라우닝은 권총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고 소기업이던 FN은 세계 유수의 총기 제작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FN M1900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Theodore Roosevelt)이 아끼고 사랑한 권총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그리고 1964년 북한은 최초의 자국생산 권총으로 FN M1900 원형을 그대로 베껴 제작했고, 후속 모델인 68식 권총과 70식 권총을 개발하는데도 크게 참고 한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FN M1900

 

FN M1900은 리코일 스프링(recoil spring)에 의해 스트라이커(striker)에 압력을 주는 싱글 액션(총을 발사할 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코킹 된 해머를 붙잡고 있는 것을 풀어주기만 하는 방식)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슬라이드 내부에 리코일 스프링이 총신을 감싼 구조는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권총이 따라 하고 있는 보편적인 디자인입니다. 

 

단점

 

7.65x17mm(.32 ACP) 탄은 호신용으로는 충분하지만 전투용으로는 화력이 약한 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32 ACP 탄의 작은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탄창에 7발이 장탄되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리볼버와 비교한다면 많은 수라고 할 수는 없고 이·탈착이 신속한 편도 아니어서 능숙한 사수가 아니면 탄창 교환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싱글 액션 방식이라서 유사시 신속히 사격을 하려면 미리 슬라이드를 당겨 놓아야 했고 이 때문에 종종 오발 사고도 벌어졌죠. 그리고 탄피 배출구의 위치가 그립과 꽤나 가까이 위치하고 탄매랑 탄피가 거의 수평으로 나와서 손이 큰 사람은 손에 자국이 남거나 탄피에 손을 데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물론 최초의 슬라이드 권총인 만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거고 잡을 때 장갑을 끼거나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잡으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 FN M1900가 사용하는 .32 ACP탄, 오른쪽: 일반 9mm 탄

 

역사적 사례

 

1898년, 러시아령 핀란드 총독으로 부임한 보브리코프(Nikolay Bobrikov)는 기존에 허용하던 자치권과 언어 사용도 제한시키면서 핀란드의 러시아화를 선도한 강경 제국 주의자였습니다. 이에 핀란드 민족운동가인 샤우만(Eugen Schauman)이 1904년 6월 16일, 헬싱키에서 FN M1900으로 보브리코프를 암살하고 장렬히 자결했습니다. 이를 기화로 핀란드 내 반 러시아 의식이 고취되었고 1917년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대한 제국의 국권을 말살시키는데 앞장서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했습니다. 비록 이듬해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기울어져 가던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쾌거였습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2정의 FN M1900과 1정의 S&W 38 리볼버를 준비했는데 가장 먼저 사용한 FN M1900(일련번호 262336) 만으로 거사를 달성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xIOyNPgVr4, 발사장면: 5:4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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