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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죽을때까지 대통령이 가능한 불곰국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인생

by OEO_oeo 2021.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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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까지 대통령이 가능한 불곰국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인생 

 

 

강력한 카리스마와 거침없는 입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차지한 주인공 바로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왠지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금수저일 것 같지만 알고보면 진짜 흙수저였다고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현대판 차르이자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어린시절

1952년 10월 7일 소련 레닌그라드에 쥐들이 득실대는 낡고 허름한 공동주택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러시아의 막강한 지도자가 될 블라드미르 푸틴 입니다.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은 해군 수병 출신으로 후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중상을 입은 상이 군인이며 어머니 마리아 이바노프나는 친정 식구들 대다수가 전쟁통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사실 푸틴 위로는 형이 둘이나 있었는데 첫째 형은 어릴 때 일찍 사망했으며, 둘째 형 역시 어린 나이에 레닌그라드 봉쇄 중 목숨을 잃게 됐다고 합니다. 레닌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도시가 무려 900일이나 봉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41 ~ 1944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군인이었던 푸틴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배급 된 식량을 몰래 빼돌려 굶고 있던 어린 아들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발각돼 세살 밖에 안 된 둘째 아이를 강제로 고아원에 수용시켜야 했고 결국 둘째는 병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전투력 유지를 위해 장병들에게 배급한 식량을 민간인에게 먹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푸틴의 어머니는 쓰러진 뒤 사망자로 처리돼 시신 처리장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를 본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다며 몸을 던져 막았고 어머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아들을 연달아 잃고 폐인이 되다시피 살던 부부가 마흔이 넘어 얻게 된 귀한 아이가 바로 푸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얻은 아이 푸틴은 어렸을 때부터 늘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들과 싸우고 다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말썽꾼이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1960년 레닌그라드에 있는 193번 초등학교에 입학한 푸틴.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늘 숙제는 나 몰라라 하고, 칠판 지우개를 친구에게 집어던지고 수업 중에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늘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문제 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래 불량 학생들과 어울리며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치고 다녀 부모의 속을 엄청나게 썪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런 푸틴을 포기하지 않고 아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엄청나게 애를 썼는데 다행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는 푸틴도 정신을 차리고 모범생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영화에서 보던 첩보원들의 모습에 반해 스파이가 되고 싶었던 푸틴은 10대 중반부터는 1920년대 러시아군의 호신술에서 발전한 무술인 삼보와 유도 등 여러가지 운동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작은 체구지만 스포츠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지 푸틴은 레닌그라드 지역에서 열린 삼보나 유도 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운동에 남다른 특기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1970년, 푸틴은 주변의 조언을 받아 첩보원이 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학교인 레닌그라드 주립대학 법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KGB(국가보안위원회)

아직 학생 신분이던 1974년, 푸틴은 KGB 수습요원으로 발탁에 되며 드디어 어릴적 자신의 꿈이었던 첩보원 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1985년 여름, 대학에서 배운 덕분에 독일어에 능통했던 푸틴은 통역관이라는 위장 신분으로 구동독에 잠입하여 핵심 인사 포섭과 군사기밀 등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파이로 독일에 간 것이 푸틴에게 있어선 최초의 해외 방문이었는데, 1985년부터 독일이 통일되던 1990년까지 푸틴은 KGB 요원으로 독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지금도 푸틴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오른손이 어디가 불편한가 싶을 정도로 몸에 밀착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KGB 사복 요원들이 언제든지 총을 꺼내 쏠 수 있도록 훈련받은 덕분이라고 합니다.

 

 

결혼

한편 그 무렵, 푸틴은 개인적으로도 신상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친구의 소개로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류드밀라 푸티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3년 정도의 연예 기간을 거쳐 1983년 7월 28일, 푸틴과 류드밀라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985년 독일로 떠나기 전 첫 딸 마리아를 얻고, 독일에서 둘째 딸 카테리나를 얻게 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류드밀라 푸티나

 

과거 KGB로 일했던 푸틴은 자신의 사생활이나 가족에 대한 취재를 일절 차단해 온 것으로 아주 유명한데, 오죽하면 국가 기밀보다 취재하기 힘든 것이 푸틴 가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두 딸 역시 가짜 신분으로 위장해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2013년 06월, 푸틴은 30년에 가까웠던 아내 류드밀라와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게 됩니다. 이후 자신보다 31살이나 어린 러시아의 전설적인 리듬체조 선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 리스트, 알리나 카바예바와 교제 중에 있습니다. 카바예바는 푸틴과 사귀고 있는 덕분에 2014년부터 NMG라는 미디어 기업의 회장을 맡아 연봉을 무려 114억 원이나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미 둘 사이에 아들이 하나니, 둘이니 끊임없이 루머가 돌고 있지만 두 사람은 그건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떼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푸틴의 전 아내 류드밀라 역시 이혼 후 21살의 연하남과 재혼해 프랑스 남서부의 휴양지에서 호화롭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푸틴과 알리나 카바예바

 

대통령이 되다

1990년 5월, 독일에서의 스파이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 민선시장인 아나톨리 소부차크의 국제문제 보좌관으로 기용돼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1996년, 소브차크는 재선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푸틴의 능력을 눈여겨 본 새 시장은 푸틴을 다시 기용하려고 했지만 배신에 대가를 받느니 충성을 위해 교수형을 당하는 것이 좋다며 푸틴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일 하나 같이 하자는 거 가지고 배신이니 교수형이니 좀 오바스럽긴 하지만 여튼 푸틴은 그렇게 시청을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푸틴의 집에 불이 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푸틴은 5천 달러가 들어있는 지갑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공기업 민영화로 벼락부자가 등장하고 부정부패가 판을 치던 시기였는데, 푸틴은 고작 550만 원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오히려 청렴한 이미지가 부각돼 인지도가 급상승하고 됩니다. 이후 푸틴은 옐친 대통령의 대통령재산관리부 2인자로 기용되며 승승장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7월엔,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정보국 FSB의 수장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1999년 8월 9일, 옐친은 푸틴을 부총리 겸 총리대행으로 임명하며 푸틴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밝힙니다. 사실 옐친과 푸틴 간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데 옐친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감옥행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옐친은 자신의 후일을 푸틴에게 요구했고, 푸틴이 이를 받아들이며 옐친의 공식 후계자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세기말인 1999년 12월 31일 옐친은 결국 사임을 발표했고, 총리 대행이었던 푸틴이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됩니다.

 

악수하는 푸틴과 옐친 전 대통령

 

그리고 그 다음해 있었던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푸틴은 드디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 재선에 성공한 후 3번 연속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러시아 헌법에 따라 당시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자리에 앉힌 뒤 자신은 총리로 실권을 장악하다 2012년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여 64%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2018년 다시 76%의 지지를 받아 2024년까지 재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지난 2020년 7월, 푸틴은 선거법을 개정하는 개혁안 투표를 실시하게 되는데, 앞으로도 자신이 계속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푸틴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재산

지난 2000년, 대통령이 된 후 사실상 20년 넘게 러시아를 통치하며 그야말로 전권을 휘두르던 푸틴, 공식적으로 알려진 그의 재산은 약 704.32 제곱미터 규모의 아파트와 구소련 시대에 생산된 자동차 2대, 오프로드 트럭 한 대, 자동차 트레일러 등 뿐이지만 사실 그의 재산은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러시아의 한 투자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재산은 차명 재산을 포함해 약 2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13조원 정도로 제프 베이조스(850억 달러)와 빌 게이츠(900억 달러)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푸틴은 자신의 공식적인 월급보다 몇 배는 더 비싼 시계를 여러 개나 바꿔가며 차고 있으며, 비행기 5대를 포함한 58종의 항공기와 4척의 고가 요트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엔 푸틴의 오랜 정적인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에 의해 푸틴이 뇌물로 받은 10억 달러의 호화 궁전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푸틴의 초호화 궁전

 

인기 있는 독재자

푸틴은 놀랍게도 여전히 많은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고, 선거 과정에서도 투표조작이 의심되는 일이 많이 있지만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은 독재자가 아니라 미국의 루스벨트나 독일의 메르켈처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장기집권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푸틴에게 문제 제기를 하거나 비판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이 있으면 여지없이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 집권 이후부터 경제가 살아났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지만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이 경제를 살리고, '지각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미국이나 유럽 등 강대국들에게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크게 어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푸틴의 장기 집권으로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훗날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지금까지 검은 카리스마,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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