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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트로트 / 나훈아 / 테스형) 트로트 전설 나훈아 일대기 2편

by OEO_oeo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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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0일,
KBS2에 콘서트로 15년 만에 방송에 등장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장악한
21세기
공중파 실시간 시청률 70%가 넘는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나이,
그는 바로 트로트 전설, 가수 나훈아!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선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트로트 가황이자 전설인

 

나훈아 선생님의 일대기 2편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총 다섯편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앞으로 나훈아 선생님의 일대기 및 재미있는 일화 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배, 꿈을 실은 작은 배, 정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위 구절은 가수 나훈아가 리메이크하여 부른 '고향으로 가는 배'에 나왔던 가사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이 노래를
가수 나훈아는 오랜 시간 북한을 상대로 두려움 없이 굽히지 않던
그만의 전쟁을 이어나가기 위해 11년 만에 만인 앞에서 불렀습니다.

 

나훈아와 북한, 이 둘의 오랜 갈등 스토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북한이라는 공포스러운 존재 앞에서

 

끝까지 굽히지 않고 대나무 같은 기개를 보여준

 

무대 뒤에서 펼쳐졌던 나훈아와 북한, 개인 대 국가 간의 전쟁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둘의 첫 인연은 1985년 9월 21일에 시작합니다.

당시 1985년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광복 40주년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교환 상봉을 처음으로 합의 이행했던 역사적인 순간이며,

 

나아가 남북 예술단을 교환했는데 예술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나훈아는

1985년 9월에 그의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양에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1985년 9월 20일 남북 이산가족 교환 상봉 보도자료


당시 나훈아는 평양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평양 아줌마'라는 곡을 작사 작곡하여 발표했고

 

이 곡으로 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고향 생각을 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1985년 발매된 '평양 아줌마'가 수록된 앨범


1985년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전성기와 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는

1998년에 취임한 고 김대중 대통령 정권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남북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시작으로 김대중 정권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 역시 유화적인 태도를 이어받은

 

고 노무현 대통령 정권하에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됩니다.

바로 1985년에 이어 두 번째 공연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북한의 나훈아 사랑은 정말 유명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 3대로 이어지는 권력자들이

모두 나훈아의 오래된 광팬임은 물론, 북한의 평범한 인민들조차도

 

당국의 감시 몰래 나훈아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를 정도로

 

나훈아는 남북한의 스타였습니다.

김정일과 그 밑의 군부 권력자들 그리고 북한 인민들의 바람대로

 

노무현 정권은 나훈아의 평양 공연을 추진했고

 

나훈아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논의되었지만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연을 거부합니다.

 

인터뷰에서 모두 다 밝힐 수는 없지만
북한이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간섭하는 것이 싫다.
평양 공연을 하면 북한 당국으로부터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서
북한의 지시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던 이 일화는 그가 북한은 물론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에게도 굽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임을 보여줍니다.

노무현 정권의 평양 공연 제안을 거부한 후 그는 11년 동안의

 

오랜 공백기를 거쳐 마침내 2017년 7월에 새 앨범을 갖고 컴백했으며

컴백 후 약 1년이 안된 시점인 2018년 4월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의 일환으로 

다시 평양 공연을 제안받게 됩니다.

 

2018년 4월 3일 열린 평양공연 '우리는 하나'


아까도 말했든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역시 나훈아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남북한 사전행사 논의 중 나훈아를 꼭 불러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예전과는 달라진 생각으로 평양 공연을 수락했을까요?

예상하셨겠지만, 역시나 그는 두 번째 거절을 합니다.

 

심지어 이번엔 더 간단한 답변으로 말이죠.

 

제가 스케줄이 바빠서요...

 

당시 상황을 풍자하는 이미지

 

당시 북한에게 이 말을 전한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실망스럽고 이해가 안 간다는 식의 북한 반응을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거절은 그가 2018년도 4월에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두 번째 제안을 받기 1년 전인 2017년 11월에 펼쳐진 그의 컴백 콘서트 중의 일화에서

 

이미 예상이 가능했던 거절이었습니다.

2017년 11월 나훈아 컴백 콘서트 9개월 전인 2월 13일에 세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김정은의 친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북한 당국의 지령으로

VX라는 독극물에 의해 암살된 사건입니다.

11년 만의 공백기를 깨고 들어온 나훈아는 김정은을 전혀 개의치 않고

그의 첫 컴백 콘서트에서 김정남의 사진은 스크린에 띄우고

 

그를 위해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불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김정남을 위해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불렀던 이유를 밝힙니다.

 

1982년 나훈아에 의해 리메이크된 '고향으로 가는 배' (원곡 / 고향으로 가는배(1977) - 오진일)

 

김정남은 '고향으로 가는 배'를 구슬픈 목소리로
10번이나 부르며 울었다고 한다.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남이 고국으로 가지 못하며
이국을 떠도는 심경을 느꼈다.

노래 가사처럼, 꿈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나훈아 / 고 김정남

 

굳이 그의 입으로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사나이 나훈아가, 부산 오빠 나훈아가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건희,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한국 역대 대통령 등등 여러 힘 있는 권력자 및

 

심지어 북한이라는 존재 앞에서도 그 자유로운 영혼을 잃지 않고

 

소신을 지켰던 가수 나훈아.

그가 왜 데뷔 후 지금까지 항상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지

 

많은 예술가들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권의 편승해서 달콤하고 기회주의적인 언행만 하는 이들을

 

우리는 아티스트라 부르지 않습니다.

 

3편에서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화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트로트 / 나훈아 / 테스형) 트로트 전설 나훈아 일대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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