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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트로트 / 나훈아 / 테스형) 트로트 전설 나훈아 일대기 3편

by OEO_oeo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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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0일,
KBS2에 콘서트로 15년 만에 방송에 등장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장악한
21세기
공중파 실시간 시청률 70%가 넘는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나이,
그는 바로 트로트 전설, 가수 나훈아!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선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트로트 가황이자 전설인 나훈아 선생님의 일대기 3편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총 다섯편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앞으로 나훈아 선생님의 일대기 및 재미있는 일화 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만약 당신이 돈을 받고 노래만 하면 되는 가수라면 돈을 벌려고 간 일본 땅에서 위협적인 극우 시위대 및 야쿠자들을 상대로 나훈아처럼 당당해질 수 있습니까? 그동안 지상파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나훈아 님의 또 하나의 일화입니다. 오늘은 그가 일본에서 콘서트를 했을 때 매번 망언을 일삼는 일본에 맞서 이국 땅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태도로 그를 위협하던 일본의 세력과 야쿠자들에게 당당하게 맞선 일화를 소개합니다. 가수 나훈아는 일본에 맞서기 전부터 이미 상남자 같은 배짱과 싸움 실력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몇 가지 일화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연예계 쪽은 깡패들의 간섭과 시비가 심한 분야다.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깡패들이 분장실에 찾아와 여자 무용수 가슴을 마구 주무르는 그 천한 작태를 참을 수가 없어 7번이나 깡패와 맞서 싸워서 경찰서를 갔다가 훈방되었다.

나훈아 / 남진 (위 내용과 상관없음)

 

그 정도로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습니다. 또한 지방 공연을할 때 건장한 남자 관객이 깨진 사이다 병을 들고 무대에 올라 나훈아를 공격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목을 겨냥하고 들어온 그 관객과 10여 분간 맞서 싸우며 기어코 완력으로 제압한 나훈아는 결국 얼굴을 70바늘이나 꿰맸고 그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이 있던 나니까 제압한 거지 다른 가수였으면 아마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 난 게 다행이다.

 

1972년 가수 나훈아 피습사건 보도자료

 

평소 말뿐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하고 오히려 다른 이을 먼저 걱정하던 상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여인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1976년 나훈아 김지미 결혼발표

1970년대, 세간을 뒤흔들며 탑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한 나훈아는 몇 년 후 그녀와 이혼을 할 때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전 재산을 김지미에게 위자료로 넘겨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혼을 했지만 한때나마 부인이었던 자신의 여인을 위해 망설임 없이 전 재산을 주며 전 여인의 미래까지 걱정했던 그의 큰 그릇과 배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정치인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90년대 초반에도 정치인들을 비판함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나훈아는 당시 여당에서 국회의원 자리를 제안받게 됩니다. 그에게 걸려온 여당 정치인의 첫 번째 제안 전화를 그는 가차 없이 무시하고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열흘이 지나 저녁을 먹자며 걸려온 여당 정치인의 두 번째 제한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 지금 저한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하라고 했습니까? 여보시오! 내가 정말로 내 나라를 위한다면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노래를 가장 잘하기 때문입니다. 정치한다는 사람들 참 밉습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그걸 생각 안 하고 나훈아가 인기 있으니까 이 사람 내보내면 당선되겠다? 그럼 우리 여당이 한석 더 차지한다? 이런 치졸한 생각만 갖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국회가 이 모양 이 꼴 아닙니까? 어서 국민들을 위해 유능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알아보십쇼!

나훈아 인터뷰 자료

 

정말 들어도 들어도 계속 두근거리는 그의 상남자 일생... 그의 이런 카리스마와 기개는 심지어 이국 땅인 일본에 가서 더 빛을 발합니다. 여러 연예인들이 더 큰 음반 시장인 일본에 가서 공연을 하고 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할 때 나훈아는 1996년 일본 오사카 공연에서 쾌지나 칭칭나네의 합창을 유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96년 일본 오사카 공연 현장 사진

내가 부르는 대로 따라 불러주이소~
그럼 오늘 내가 밤새도록 노래를 하겠소.

 

그가 유도했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누가 뭐래도 우리 땅!

 

일본 땅에서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독도는 한국 땅 누가 뭐래도 독도는 한국 땅'을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외쳤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순간입니다. 이런 그의 기행일본에 알려져 수많은 일본의 극우세력과 야쿠자들이 나훈아의 목숨을 위협했지만 그는 이렇게 초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출처: 옥탑방 문제아들

때리 직일라면 지기삐라~

 

상남자라는 수식어로도 다 담을 수 없던 그의 드라마 같은 인생과 거침없는 솔직한 발언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4편에서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화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트로트 / 나훈아 / 테스형) 트로트 전설 나훈아 일대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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